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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고향
    heretic 2011. 9. 18. 15:26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남원에 갔다. 전에는 서울에서 남원까지 길이 막히지 않아도 5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이번엔 3시간 반정도만에 도착했다. 도로사정도 좋아졌고 새로 생긴 전주-순천간 고속도로 덕분이기도 했다. 갈수록 세상이 작아지는 것만 같다. 어렸을 때 서울에 한번 가려면 꽤나 오랜 시간을 차 안에서 버텨야했던 기억도 난다.
     연휴 동안 집에서 한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만화책 보고, 자전거 타고 시내를 돌아다닌 게 전부다. 아, 인터넷도 빼놓을 수 없지. 하루 아침 무심코 모니터창에 지도를 띄웠다. 내가 있는 남원을 중심으로 지도가 나타났다. 아하, 어릴 적 자주 갔던 곳 구경이나 해볼까.
     맨 먼저 외가가 있던 동네를 찾아보았다. 남원시내에서 좀 떨어진 시골마을이다. 정식 이름은 대곡리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다들 대실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는 대실에 자주 갔었다. 외가집은 마을에서도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세 집 가운데 하나였다. 나에게 외가집은 명절에만 가는 곳이 아니었다. 휴일이든 방학이든 내키면 혼자서 가는 곳이었고, 흙과 돌, 나무가 무한히 있는 시골은 사방이 놀이터였다. 겨울에는 대나무를 잘라서 연을 만들고 얼어붙은 겨울 논에서 얼음을 지쳤다. 산에 있는 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워 고구마를 익혀먹기도 했다. 여름에는 흐름이 거의 없는 강에서 RC보트를 띄울 수 있는 곳이었다. 날씨 좋은 밤에는 은하수를 볼 수도 있었다. 방학숙제로 그려간 그림은 대개 외가집에서 본 시골풍경이었다.
     그런데 어라, 어디가 어디인 지를 모르겠다. 대산면 대곡리라는 글자는 보이는데 내가 놀던 그 마을이 아니었다. 그곳엔 고속도로 분기점이 있었다.
     

    예전부터 있던 88고속도로와 새로 생긴 전주-순천간 고속도로가 딱 거기서 교차했다.

     어릴적 내 놀이터이자 수 대를 이어온 어머니의 고향이 통째로 사라졌다. 위에 나열한 것들보다 실제로는 훨씬 많은 추억들이 이제 완전한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정말 십년만에 강산이 변했다. 새로운 고속도로 덕분에 더 빨리 시골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가고자 하는 시골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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