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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9일
'몬스터'에서 요한 리베르토는 완전한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기억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립니다. 하지만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완전한 죽음도, 완전한 망각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죠. 그토록 냉정하던 그가 떠난 마지막 자리엔 인간적인 자국만이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저 역시 완전한 망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망각이라는 것 또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내 몸을 구성하는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완전한 상실은 제가 절실히 원하던 것이었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잊고 있었다' 또는 '잊고 있다'는 진행형의 어구가 암시하듯, 망각은 상실이 아니라 기억의 한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에 대한 느낌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나는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애써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지만요. 언젠가 한번 깨달았던 바로 상처는 아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에 익숙해지도록 만들 뿐입니다. 나는 어느덧 이 상처가 주는 아픔에 충분히 익숙해져왔습니다. 당신이 그 안으로 헤집고 들어와 벌리지만 않는다면요. 비록 그것이 당신의 선의든 악의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 아픔에 한 번 더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 나는 겨우 '망각'을 얻어낸 듯 보였지만 그것이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요한이 결국 자신을 유일하게 기억해줄 수 있는 덴마를 죽이지 못한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을 기억할 수 있는 모두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괴롭지만, 거짓말을 좋아하는 내가 당신에게만큼은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왔기 때문에, 그래서 아픔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인지 한 편으로는 기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당신이 나를 영원히 미워하게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죽음이 될 수 있을까요?